딱, 일주일.
천하의 태도라고 해도 신체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가 정확하게 일주일이었다. 보다 소상히 말한다면, 다이무스 홀든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를 괴롭힌지가 정확하게 일주일이 되어 간다는 뜻과도 같았다. 물론 태도 본인은 그것이 자신이 평소에 하는 일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위사람들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정도로 위험하게 보였다.
뭐가 문제야?
무엇을 묻지.
짜증을 내려다가 지금의 상황에는 자신이 화내는 모양새가 그닥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서 하랑은 톤을 어색하게 꺾으며 그럭저럭 평이한 투로 물었다. 그렇지만 그 애써 물은 것을 헛으로 돌리는 태도의 무신경한 대답에, 결국 버럭 성을 내고 말았다.
왜 모른 체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만
하랑은 주위 사람들이 한번 흘끗 처다볼정도로 울분을 토해냈다가, 그렇게 소리치고서도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단 내가 풍겨올 것처럼 생긴 케이크의 형태가 무너질 정도로 난도질해댔다. 한참을 말없이 그 행동만 반복하며 사정없이 포크 아래 뭉그러지는 케이크었던 것의 형체를 보고서는 다이무스는 한숨을 쉬었다. 나이 차가 이래서 무서운가, 종종 하랑이 성을 버럭 내면서 하는 말들 중에는 대관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좀처럼 쫓아갈 수 없는 때가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이번 주 내내 기껏 만날 때마다 멍하니 다른 곳만 쳐다보지를 않나, 부르면 깜박깜빡 못 듣고 재차 되묻지를 않나, 회사에서 누가 괴롭히기라도 해?
토라진 듯이 털어놓는 그 말에 다이무스는 하랑의 말을 듣고서야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좀처럼 믿기지 않아서였다. 굉장히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조금 더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늘 그래왔던것처럼 어느순간 자신의 통제 하에 들어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업상의 상대라던가, 동료라면 이 상황에서 사과를 건네는것이 보다 바람직한 상황이었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기도 했고, 누구에게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이야기니 그는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어린 연인에게 답을 구해보기로 했다.
뭐?
아깐 나더러 잘 듣지 못하냐고 묻지 않았던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은 태도 특유의 질책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그런 어딘가 고압적인 분위기에 괜히 발끈했겠지만, 헛소리를 흘리듯이 되물은 것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하기에 그랬다.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천하의 태도가 컨디션이 나쁜 이유가.
불면증?
퍽 진지한것처럼 태도는 생소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상하게도 잠에 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전에 겪어 본 일이었다면 나름의 해법을 찾아서 시도라도 해보았겠지만 난생 처음 겪은 일이고, 그의 위치라고하는 애매한 입장 때문에, 섣불리 누군가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잠이라,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하면 좋을까. 우선 하랑은 알고 있는 자잘한 방법들은 죄 늘어놓아보았지만 태도라고 해서 자잘한 것들까지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로가 몰려오면 기절하듯이 잘 수 있지는 않을까 잠이 올 때까지 수련으로 몸을 혹사시켜봤지만 아주 잠깐 기절하듯이 잠이 들고 금방 깨버려서 말 그대로 수면이 아니라 기절로 그쳤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하랑의 말에, 다이무스는 어쩐지 멋쩍은 듯한 표정을 하고서는 아무래도 자야 된다는 것에만 집중하니 생각보다 금방 된다고 답했다.
수련.하랑은 이토록 숨쉬듯이 단련하는 이가 고작 잠자리에 들지 못해 고민한다는것이 참으로 우습기도 했다. 자신은 나몰라라 내팽개치고 있어도 잘만 자질 않던가. 하다못해 잠이 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걸로 좋다며 흥미를 끌 만한 것을 찾을 텐데, 그 와중에도 단련을 떠올리는 이 사람은 정말이지 계속해서 스스로 벼려지기 갈망하는 칼 같았다. 대책 없이 떠오르는 민망한 생각들을 누르며 잠을 부를 만한 것이 무엇이 있나 떠올렸다
술은?
어느 정도 마셔봤다만, 사고만 흐릴 뿐이고 여전하더군.
으으음.. 차같은건 마셔봤어?
따뜻한게 들어가는데도 오히려 잠이 깨.
여태껏 잠자리에 드는게 그토록 쉬웠으면 잠이 안온다는 문제는 사소한것이지만 꽤 클지도 몰랐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것, 그렇기에 당황스러운 것이던가. 자세를 고치다가 품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부적의 소리가 귓가에 닿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홀든은 예로부터 대대로 무가라고 했었다. 대를 내려서 원한을 살 만한 일쯤은 한두개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대를 내려오는 저주라던가.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다이무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손 끝을 물고 있으니, 다이무스가 손 끝을 잡아 가까이 당기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가 다른 이에게 ‘싫은 것’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면 보다 조심스러운 표현이 될 지 몰라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하랑은 더러 늙은이같다며 놀려대곤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되려 제가 부끄러워 심통내듯 하는 말이기도 했다.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손 끝으로 닿아오는 단단한 손의 감촉에 짜증을 부리며 같이 일었던 화는 가라앉고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으음, 집 있잖아. 아무래도 원한을 살 일이 많지?
다이무스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것처럼 잠자코 듣고 있다가,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
그렇지, 하고 얼버무리듯이 말했지만 쉽게 연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무스만 해도 오히려 영안으로 보자면, 질릴 정도로 바른 기운을- 폭사해내는 수준에 가까웠다. 스스로가 검의 길을 단련하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능력과 맞물려서 기개조차도 범인들과 다른 탓인지 갈무리해도 은은하게 주위를 위협하듯 흐르는 그 기운은 보면 볼수록 감탄스러웠다. 맨 처음에 전장에서 마주쳤을 때는 그강맹함에 거리가 제법 멀어도 그 자취만이 선명하게 다가올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쉽사리 잡귀 따위에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쫓아버리면 모를까. 가끔 제가 부리는 신호조차도 그를 향해서 으르렁거릴 정도이니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래도 제 눈으로 확인해두고 싶었다.
짐작이 가는 게 있기는 한데, 확신을 못하겠어.
무엇을 하면 되지?
번잡스러운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묻는 것. 하랑은 때때로 그 단순한 말에서 새어나오는 믿음이 듬직했다.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잠드는 곳, 일생을 보내게 되는 곳. 그만큼 영향을 끼치기 쉬운 장소는 없었다. 만약 다이무스가 영향을 받는 장소가 집이라면- 그 안에 어떤 상태인지정도는 봐 두고 싶었다.
침실, 보여줘.
물론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의도를 알 수 없었던 다이무스는 하랑의 그 말을 듣고 난데없이 낯빛이 변하며 어쩐지 초조해 했다.
....그러지
한박자 늦은 대답에 분위기가 이상해져 능청스레 고개를 올려 시선을 마주하니 당황스러운 시선이 마주쳤다. 무언가 오해한 것 같은 느낌에 결국 서둘러 형체가 무너진 케이크를 입에 밀어넣으며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당신이 고작 잡귀같은거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 집이 아닐까, 싶어서.
포크의 끝을 물고 괜찮 것을 물었나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자 다이무스 역시 제가 오해한 것을 알았는지 이마를 짚고 짧게 한숨을 쉬고서는 상관없다, 며 짧게 대답했다.
-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다이무스의 사택은 제법 소담한 곳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홀든이라는 이름을 생각했을때 그 규모가 소박한 것이지 한 사람이 살기에는 충분히 컸다. 인근의 다른 주택들과는 달리 혼자 다른 분위기를 풍기듯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집이었지만 짙은 색의 벽돌로 어쩐지 가까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어쩜 이렇게 사람이나 집이나 똑같은 분위기를 풍기나, 하고 하랑은 감탄했다. 아무래도 사적인 공간이고 하니 궃이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곳이었고, 특별하게 보고 싶다고 떼를 쓴 적도 없었다. 인근의 길도 잘 아는 편언 아니어서, 다이무스의 옆만 종종거리며 따르다가 어쩐지 그의 개인적인 공간에 발을 들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난데없이 몰려왔다.
사용인들이 집을 청소할 시간은 아니어서 열쇠로 문을 열고, 뒤를 보자 분명 옆에서 쫓아오고 있던 하랑이 저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자 의아한 얼굴로 불렀다.
...내키지 않나?
그,런거 아냐!
어딘가 모르게 실망하는듯한 다이무스의 모습에 하랑은 말을 얼버무리고선 냉큼 그 뒤를 따랐다. 복도를 따라 침실로 향하는 길에 어쩐지 자신이 괜한 소리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솟아올랐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조금씩 찌르고 있어서 이대로 무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다이무스가 제안한게 아니라 하랑이 스스로 보고 싶다고 원한 것이었으니까.
물론, 침실 안에 들어가서 느낀 첫 번째 소감은- 익숙함이었다. 그의 예장처럼 붉고 검은 색으로 깔끔하게 장식된 방이었다. 지저분한 소품은 없고 어떻게 보면 이 넓은 방에 조금 삭막하게 보일 수도 있는 풍경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꼭 있어야 할집기와, 칼을 받쳐두는 곳이었다. 정말이지 철두철미한 남자였다. 칼받침을 살짝 쓰다듬자 영안으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중한 것을 지킬거야. 그가 칼에게 언제고 속삭이는 목소리였던가. 칼은 잘 갈무리되어 내뱉지 못하는 소리를 그것을 받치는 것이 조그맣게 속삭인다.
물끄러미 다이무스의 옆에 언제나 매달린 칼을 봤다. 그를 닮아서 묵직한 칼이었다. 흔히 날붙이들이 주절거리는 천진난만한 악의 같은것이 들리지 않는 신기한 칼이었다. 오히려, 하랑이 처음 접한 조용한 칼이었다. 베어버리겠다고,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소리치는 칼이 아니었다. 물건이 외치는 소리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말을, 마음속에 품은 것을 옮아간다. 집으로 본래 찾아온 의도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알면 알 수록 대책없이 빠져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벼운 웃음만 나왔다.
대충 둘러본 집은 역시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를 위협할 만한 것은 없었다, 되려 그가 내뿜는 것들 때문인가, 집을 돌보는 것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영들이 집을 누비는 것이 아니라 집 구석구석으로 쫓기듯 돌아다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음.. 잘때 무슨 생각을 해?
내일의 일정이 있으니,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만.
생각, 생각에 집중해버리면 도리어 잠이 깰 수도 있겠지. 품 안에 있는 부적을 꺼내다가 천장으로 슬쩍 던져 보았다. 위협하는듯한 붉은 막이 솟기에 아무래도 위력을 조절해야겠다 싶어 천장에서 그것을 도로 떼어 문자를 흐뜨러트려 제압의 힘을 덜어냈다. 억눌러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만, 강한 위엄을 흐뜨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 생각이 잠을 못 자게 하는건 아닐까, 내가 쓰는 부적 본 적 있지?
다이무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 끝에서 부적의 남은 조각을 귀화에 태워 흩날리면서 말을 이었다.
기세를 억누르는거야. 그래서 이름은 제압부. 아마 아주 조금, 잠들기 전에 집중하는 걸 흐뜨려주면 잘 잘수 있지 않을까?
+
그래서, 말이다만.
엉, 효과는 어땠는데?
말을 하기가 민망한 듯, 다이무스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잠깐이었지만 멈칫했다. 효과가 별로 안 좋았나? 악몽에 눌린 건 아니겠지? 하고 걱정이 슬그머니 솟아올랐지마 이내 다이무스의 대답이 그것을 부정했다.
..족히 열네 시간은 잔 것 같군
..쩌는데..?
'사이퍼즈 > 그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012 (0) | 2015.10.12 |
|---|---|
| 찾아드는 존재 (0) | 2015.07.12 |
| 쌍창 단문 - 신 (0) | 2015.06.29 |
| 로라드렉/ 너머에서 (0) | 2015.06.04 |
| 로라드렉/ 저편에서 (0) | 2015.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