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스트
걷는데 다리에 신경이 쓰였다. 미묘하게 다리가 비틀려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피곤이 덜 가셨나 싶었다. 진입을 위해서 지형을 가늠하고 있다가 어쩐지 다리가 아파오는것도 같아 한숨을 짧게 쉬고서는 창을 쥔 손에서 힘을 빼니 조그만 방심을 비웃듯이 옆에서 난데없는 공격이 들어왔다.
드
정강이를 주저없이 걷어차자 무게가 한순간 뒤로 쏠리며 넘어지려는 것을 몸 반대편에 힘을 꾹 실어 버텼다. 이게 무슨 난데없는 일인가 싶어 해명을 요구하듯이 그를 바라보자.
나중에 공방에 가서 고치라고 할 테니 일단은 그걸로 참아.
그제서야 다리에 미미하게 가해지던 아픔이 한결 가신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걷어차인 순간의 아픔도 없었다. 발자국이 사납게 남아있기는 했지만 발길질로 인해서 부츠의 정강이 부분이 한쪽으로 쏠리려다가 미묘하게 걷어차인 부분에서부터 반듯해져 있었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휘어져있었구나.
이리 와, 하고 드렉슬러가 손짓하기에 가까이 가니 한쪽 무릎을 꿇어 앉고서는 부츠 안쪽의 매듭을 다시 해 주었다, 아랫쪽은 조금 더 바짝 조여놓고, 위쪽은 조금 더 널찍하게. 굳이 전투중에 손을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드렉슬러는 버클에 손을 대면서도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빼놓지 않았다.
이러니까 나랑 네 무구만큼은 새파랗게 어린 놈들한테 맡기지 말라고 했는데..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
테라나이트를 넣어서 주조하는것은 그 결과물이 어떤 것이 되건 간에 제작이 어렵다고 헀다. 거기에 용기사들을 위한 맞춤이니 테라나이트의 비율이 다른 무구들에 비해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율이 높았다. 처음에는 공방에서도 성공하기 어렵다며 거부한 작업이었다. 다만 이름있는 공방이 그곳뿐인데다가 드렉슬러가 그곳의 나이든 장인을 도발하면서 성사되다 시피 한 계약이었으니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추천도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드렉슬러가 고른 곳이라면 기본적인 준비만큼은 잘 되어 있는 곳일 터였다. 다만, 생전 처음 잡아보는 재료들에 대한 것들은 전문적으로 그것만을 익혀온 이들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던 듯 했다.
공방의 선정에는 불만이 없었다. 이제와 결과물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계약을 파기하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의외의 수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이나, 무구에 관련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불꽃이 전달하는 열기와 쇠 마주치는 소리로 들어찬 공방으로 들어설 때, 안타까움이 가슴 한 구석을 찔렀다. 그 때에 옆에서 바라보았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쉬움과,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질투가 섞인 그 눈. 투창에 미쳐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고, 집에 돌아가면 발에 채일 정도여서 매번 정리하는데도 언제 정리했냐는듯 수북하게 쌓여가는 도면들이 말로는 다 할수 없는 그의 열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밖에 생각해볼수 없었던 것들. 가문이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그의 소망의 실현을 저지했던 것이 눈앞에 있을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나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귀가는 조금 늦어도 좋을 것이다. 일을 좀 미루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드렉슬러의 일처리가 부족한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서둘러 일을 끝내면 숨을 돌릴 시간 정도는 주어져도 좋을 터였다.
그는, 허용과 비굴의 사이에서 긍지를 가질 사람이리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뜻으로, 자신의 긍지로. 쇠를 두드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드렉슬러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드렉슬러라고 하는 인간이 완전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 줄 것 같았다.
..자네가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듯 드렉슬러가 매듭을 당기다 말고 고개를 마주하면서, 헛소리 말라는 듯이 이죽이다가 진지한 한 얼굴을 마주하니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거 자네가 언제부터 타인의 시선을 신경썼다고.
자네가 만드는 거라면야 믿을 수 있고, 나도 안심할 수 있고. 좋은 것 아닌가?
무,무슨 헛소리야!
정강이를 한대 더 걷어차겠다는 듯 다리를 뒤로 끌었다가, 부츠에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을 보고 못마땅하는 듯이 앞서서 가 버렸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빨리 와!
라며,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